들어가며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전·월세 계약을 체결하거나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공인중개사로부터 가계약금으로 먼저 얼마를 입금하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계약금이면 계약금이지, 가계약금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공인중개사나 임대인·매도인은 가계약금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 요구에 응해 가계약금을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하에서는 가계약금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가계약 파기 시 반환받을 수 있는지 하나씩 알아보도록 할 텐데, 가계약금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약금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계약금이란
먼저 계약금이란 계약을 체결하면서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교부하는 금전을 말합니다. 예컨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교부하는 금전,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교부하는 금전이 있습니다.
만약 계약금만 교부한 단계라면, 교부자는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수령자는 계약금의 배액(= 2배)을 상환하여 그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65조 제1항, 제567조).
예를 들어, A집에 대해 계약금만 교부한 임차인·매수인은 개인적인 사정이 발생했거나 A집보다 더 좋은 B집이 나왔다면, A집의 계약금을 포기함으로써 A집에 대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A로부터 계약금만 수령한 임대인·매도인은 B로부터 임대차보증금·매매대금을 A보다 더 많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면, A에게 계약금의 2배를 상환함으로써 A와의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계약금은 민법상 해약금(=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금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규정이 가계약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가 법적 쟁점이 되는 것입니다.
법적 관점에서 보는 가계약금
가계약과 가계약금은 정식 법률용어가 아닙니다. 단지 당사자 간에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가계약이라는 계약 형태가 등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매수인이 집을 알아보다가 A집이 마음에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무래도 임차인·매수인은 A집을 곧바로 계약하지 않고 더 좋은 집이 있는지 찾아볼 것입니다.
그런데 더 좋은 집을 찾아보다가 다른 사람이 먼저 A집을 계약하면 이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보통 부동산 상승장이나 이사철, 전세난일 때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공인중개사도 "A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면서 놓치기 싫으면 가계약금이라도 걸으라고 부채질합니다.
그래서 임차인·매수인은 마음에 드는 A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가계약금을 교부합니다. 가계약금을 교부했으므로, 정식 계약을 체결하는 날까지는 뺏길 걱정 없이 다른 집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가계약이란 당사자 간에 정식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해당 물건에 대한 우선적 지위를 미리 선점하기 위해 임시로 체결하는 계약을 말하고, 그 과정에서 교부하는 금전을 가계약금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가계약금은 얼마를 교부하는 것이 맞을까요. 일반적으로 계약금은 총금액에서 10%를 교부하므로, 가계약금도 계약금의 10%를 교부하는 것이 거래 관행입니다.
그러나 전·월세나 매매계약의 현실을 보면, 가계약금을 계약금의 10%로 약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가계약금으로 요구하는 금액은 100만 원, 300만 원, 500만 원 등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반환 청구 가능할까?
위 예시에서 임차인·매수인은 A집에 대한 가계약금을 교부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A집보다 더 마음에 드는 B집을 발견한 것입니다.
임차인·매수인은 A집에 대한 가계약을 파기하고 미리 선점하기 위해 교부했던 가계약금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과연 이 경우 임차인·매수인은 가계약금을 반환받을 수 있을지 이하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계약을 체결하고 가계약금을 교부하는 형태는 보통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① 가계약금을 해약금으로 본다는 서면 약정을 하고 가계약금을 교부한 경우, ② 가계약금을 해약금으로 본다는 구두 약정을 하고 가계약금을 교부한 경우, ③ 아무 약정 없이 가계약금만 교부한 경우입니다.
먼저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고, 위 ①~ ③의 경우에 가계약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대법원 2022. 9. 29. 선고 2022다247187 판결 > 가계약금에 관하여 해약금 약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약정의 내용,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에 비추어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약정하였음이 명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위 법리에 의하면, 당사자 사이에 가계약금을 해약금으로 하는 약정이 있었음이 명백히 인정되지 아니하는 한, 교부자가 스스로 정식 계약 체결을 포기하더라도 가계약금이 수령자에게 몰취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
계약금은 민법 제565조에서 해약금으로 본다는 규정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반면, 가계약금은 민법이나 다른 법률에 해약금으로 본다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가계약금을 해약금으로 보기 위해서는 대법원 판례와 같이 당사자 사이에 별도로 해약금 약정을 명백하게 해야만 합니다.
가계약금에 대해 명백하게 해약금 약정을 하였다면, 교부자는 가계약금을 포기함으로써 가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수령자는 가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함으로써 가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교부자는 가계약금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가계약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됩니다.
해약금 약정을 서면으로 한 경우
위 예시로 돌아가 임차인·매수인이 A집에 대한 가계약금을 교부하면서 "가계약금은 해약금으로 본다."라고 서면으로 명백하게 해약금 약정을 하였다면, 임차인·매수인은 가계약금을 포기하여 가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 뿐이므로, 가계약금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합니다.
위 사진을 보면, 계약금 중 100만 원을 임대인 통장으로 입금한다고 기재되어 있으므로, 100만 원은 가계약금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임차인 위약 시 계약금 일부 100만 원은 임대인에게 귀속된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결국 임차인이 가계약금에 대하여 명백하게 해약금 약정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해약금 약정을 구두로 하거나 약정하지 않은 경우
먼저 임차인·매수인이 A집에 대한 가계약금을 교부하면서 가계약금은 해약금으로 본다고 구두로만 약정하였다면, 이 경우 해약금 약정 여부에 대하여 다툼의 소지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해약금 약정을 명백하게 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임차인·매수인은 A집에 대한 가계약을 해제하면서 가계약금의 반환도 함께 청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구두 약정이 있었음을 명백하게 입증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임차인·매수인이 A집에 대한 가계약금을 교부하면서 가계약금에 대하여 해약금 약정을 하지 않았다면, 임차인·매수인은 당연히 가계약을 해제하면서 가계약금의 반환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다가 큰코다친다
가계약금은 부동산 거래 과정의 중요한 시작점이며, 원만한 거래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가계약금의 반환 조건과 함께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보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가계약을 할 때 어떤 내용으로 약정하는지에 따라 추후 가계약금을 반환받을 수도, 반환받지 못할 수도, 심지어는 매도인이나 임대인에게 돈을 더 주어야 할 수도 있으니, 아무리 가계약이라 하더라도 쉽게 생각하지 말고 꼼꼼히 검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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