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피해자가 있는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의 형량을 낮출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무엇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 '피해자와 합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는 피해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 피해자와 연락은 되지만 합의 의사가 전혀 없거나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 등과 같이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피해자와 합의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피고인은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안 됩니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최대한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재판부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공탁'입니다.
공탁이란 채권자나 피해자를 위해 법원 공탁소에 금전, 유가증권, 기타 물건 등을 맡김으로써 변제나 양형 참작의 효과를 얻는 제도를 말합니다.
형사공탁 특례 신설 이전
예전부터 형사사건의 피고인은 피해자를 위해 공탁할 수 있었고 그 근거 규정은 민법 제487조입니다. 이를 '형사변제공탁'이라 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민법 제487조(변제공탁의 요건, 효과)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아니하거나 받을 수 없는 때에는 변제자는 채권자를 위하여 변제의 목적물을 공탁하여 그 채무를 면할 수 있다. 변제자가 과실 없이 채권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도 같다. |
형사변제공탁은 민법 제487조에 따른 공탁으로써 위와 같은 원인이 있어야 할 수 있고, 공탁서에 피해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인적사항을 기재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보통 피해자는 자신의 인적사항이 피고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단순 민사사건과는 달리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형량을 낮춰야만 하는 피고인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아내 합의를 요구하는 등 2차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법은 피해자에게는 사생활의 보호 및 피해회복을 위하여, 피고인에게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공탁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하여 공탁법에 '형사공탁 특례' 규정을 신설하였고, 이는 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형사공탁 특례 신설 이후
신설된 '형사공탁 특례'는 공탁법 제5조의 2에 규정되어 있고, 이는 민법 제487조 변제공탁의 특칙에 해당하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탁법 제5조의2(형사공탁의 특례) ①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법령 등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그 피해자를 위하여 하는 변제공탁(= 형사공탁)은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 소재지의 공탁소에 할 수 있다. ② 형사공탁의 공탁서에는 공탁물의 수령인(= 피공탁자)의 인적사항을 대신하여 해당 형사사건의 재판이 계속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사건명, 조서, 진술서, 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명칭을 기재하고, 공탁원인사실을 피해 발생시점과 채무의 성질을 특정하는 방식으로 기재할 수 있다. ③ 생략 ④ 생략 ⑤ 형사공탁의 공탁서 기재사항, 첨부해야 할 서면, 공탁신청, 공탁공고 및 공탁물 수령·회수 절차 등 그 밖의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
위와 같이,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됨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모르더라도 형사공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란 피해자 인적사항에 대한 열람·등사신청이 불허가된 것 뿐만 아니라 허가되었으나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것도 포함합니다.
이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 대신 형사공탁서에 기재해야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습니다.
1.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명칭이란 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의 성명을 의미하므로, 피공탁자(= 피해자)의 성명은 공소장에 쓰여 있는 대로 기재하면 됩니다. 공소장에는 보통 '가명'이나 '홍길O'과 같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2.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및 사건명을 기재해야 하고, 공소장에 기재된 검찰청과 사건번호도 기재해야 합니다.
이처럼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되면서 종전과는 달리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변경된 것입니다.
3. 공탁원인사실에는 피해 발생시점과 채무의 성질을 특정하는 방식으로 기재하고, "합의를 위하여 재판기록의 열람 및 등사신청을 하였으나 불허되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으므로 이를 공탁함."이라고 기재하면 됩니다.
4. 비고에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사실을 소명할 수 있는 서면을 첨부해야 합니다.
예컨대, 나의 사건검색 서류(공탁자 소명)·공소장(피공탁자 소명)·재판기록 열람등사신청서 사본(공탁원인사실 소명)을 첨부하면 되고, 열람등사신청서는 민원실의 열람등사실에서 받으면 됩니다.
5. 대리인이 공탁하는 때에는 대리인의 성명과 주소를 기재한 후 기명날인하고, 위임장 등 대리인의 권한을 증명하는 서면을 첨부해야 합니다.
6. 공탁을 하려는 사람은 형사공탁서 2부를 작성 → 관할 법원 공탁소(= 종합 민원실에 소재)에 제출 → 공탁금을 지정된 보관은행(= 종합 민원실에 소재)에 납입 → 납입 영수증을 공탁관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7. 공탁금이 납입되면 공탁관은 법원 및 검찰에 공탁사실을 통지하고, 아래와 같이 전자공탁 홈페이지에 형사공탁 공고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형사공탁이 완료된 것입니다.
진정으로 합의가 어려울 때에
앞에서 설명했듯이, 피해자와의 원만한 합의는 형량을 정하는 결정적 요인 중 하나이지만, 합의의 과정이 늘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사건의 경중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성범죄나 교통사고 사망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 측이 전혀 합의 의사가 없는 때도 있습니다.
위와 같이 피해자와의 합의 가능성이 없는 때에는 피고인의 형량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공탁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고 피해회복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때, 형사공탁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사공탁 2편, 가해자가 몰래 형사공탁한 경우 피해자의 대처방법]
[형사공탁 3편, 피해자 괴롭히던 기습공탁·먹튀공탁 악용 막는다]
'형사 법률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사받으러 오라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면, 고소장 열람부터! (0) | 2024.03.05 |
---|---|
10분이면 되는 약식명령 이해하기 (0) | 2024.03.04 |
경찰의 불송치 결정, 그 후의 진행 절차 - 고소인 편 (0) | 2024.02.23 |
경찰의 불송치 결정, 그 후의 진행 절차 - 피의자 편 (2) | 2024.02.16 |
[형사전문변호사/성공사례] 차용 사기로 고소당했으나 무혐의 불송치 결정 받은 사건 (2) | 2024.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