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개요
A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고수익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카카오톡으로 연락하여 실장이라는 사람과 비대면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실장은 A에게 비트코인 환전이나 서류 회수, 채권 추심 업무를 하는 아르바이트라고 설명하면서 1건 당 20~30만 원 정도의 수고비를 주겠다고 제안하였고, A는 이를 수락하여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A는 부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으면, 수금 장소로 가서 돈을 수거한 뒤 부장이 알려준 계좌로 송금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 3일 후 갑자기 추심 업무가 취소되자, A는 면접을 보았던 실장에게 "제가 하는 일이 많이 문제 되는 일이냐."라고 물었고, 실장은 "매뉴얼만 잘 지키면 문제없다."라고 답했습니다.
A는 이를 이상히 여겨 같은 날 인터넷에 '수금 알바'로 검색해 보았는데, 보이스피싱 관련 글이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한 업무가 보이스피싱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는 깜짝 놀라 다음 날 경찰서에 찾아가 직접 자수하였으나, 경찰 및 검찰은 A를 보이스피싱 조직원 중 하나인 현금 수거책으로 판단하고 사기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보이스피싱이란
보이스피싱은 전화나 PC 등 전기통신매체를 이용하여 타인을 기망하거나 착오를 일으켜 재산을 편취하는 특수한 사기 범죄의 일종으로 형법 제347조 사기죄가 적용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범죄 조직을 구성하고 총괄하는 '총책', 피해자에게 전화하여 저리로 대출해 주겠다고 속이는 '유인책',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채팅방을 개설하여 하부 조직원에게 범행을 지시하고 관리하는 '관리책', 관리책의 지시에 따라 피해자로부터 돈을 수거하여 전달하는 '현금 수거책' 등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보이스피싱 조직의 근거지가 대부분 해외에 있고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특성상, 보이스피싱 범죄의 최상위 포식자인 총책 등은 검거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실무적으로 볼 때, 보이스피싱 범죄로 처벌받는 범죄자들의 대다수는 가장 하위의 말단 조직원이라 할 수 있는 현금 수거책들 뿐입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A도 현금 수거책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자수했다고 해서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A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이 했던 수금 아르바이트가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것을 안 이후 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하였습니다.
A가 자발적으로 자수한 사실에 중점을 두고 판단해 보자면, A는 범행 당시 자신이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이 대규모의 피해자와 피해액을 양산하고 이에 따라 실무상 엄벌하려는 경향이 강한 점에 비추어보면, 단순히 자수를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A가 범행 당시 자신이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사실을 몰랐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A가 자수한 사실 외에도 A가 성명 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공모하지 않은 사실, 범행 당시 사기의 고의가 없었다는 사실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판 과정에서의 변론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기의 고의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의는 크게 '확정적 고의'와 '미필적 고의'로 나뉩니다.
확정적 고의란 행위자가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미필적 고의란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을 명확하게 모르지만 그런 결과가 발생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A가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피해자로부터 돈을 수거하였다면, A는 사기죄에 대한 확정적 고의를 가진 것이 됩니다.
이에 반해 A가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으나, "내가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일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피해자로부터 돈을 수거하였다면, A는 사기죄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가진 것이 됩니다.
우리나라 형법은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확정적 고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미필적 고의만 있더라도 범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범죄자의 고의를 더 쉽게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판 과정에서 본 변호인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들어 범행 당시 A에게 사기의 미필적 고의조차 없었음을 적극 주장하였습니다.
① A는 실장이라는 자와의 면접에서 공금을 횡령할 시 처벌받겠다는 취지의 선서를 하였고, ② 실장으로부터 매뉴얼만 잘 지키면 문제없다는 말을 듣고 단순히 추심 업무로만 생각하였으며, ③ A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전력이 전혀 없고, ④ 설사 A가 불법적인 일에 가담한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불법적인 일에는 탈세나 불법 환전 등 여러 가지가 있는 점에 비추어보면, A가 자신이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면서 돈을 수거하였다고 볼 수 없다.
무죄 판결
1심 재판부는 본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아래와 같이 A의 사기 혐의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2심 재판부 또한 마찬가지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함으로써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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